역사 칼럼

신냉전과 이이제이

東安齋 2010. 7. 16. 14:10
[세계포럼] 이이제이(以夷制夷)<세계일보>
  • 입력 2010.07.14 (수) 20:01, 수정 2010.07.15 (목) 22:39
        신냉전 대결의 고리 북한과 대만
        ‘위기 망령’ 부르는 당쟁, 국론 분열
  • 1년10개월 전의 일이다.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원국 총리들이 모였다. 종종걸음을 하는 원자바오 중국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의 모습에서는 위엄이라곤 찾아보기 힘들었다. 금융위기에 역병처럼 번지는 중앙아시아의 달러 고갈 사태, 10여년 만에 되살아난 러시아의 외환위기 악몽. 그들은 ‘긴급 총리회의’라는 이름이 붙은 이 모임에서 자구의 묘책을 마련해야 했다.

     

    강호원 논설위원

    ‘중국 우산’이라는 말은 이 회의에서 처음 등장한다. 중국의 외환으로 동맹국을 지원하고, 위안화와 루블화로 무역대금을 결제하는 그들만의 공조체제다. 중국이 주도하는 ‘돈의 우산’이기도 하다. 신냉전은 이 회의를 전후해 전면화됐다. 과거의 냉전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의 체제 대결인 데 반해 신냉전은 살아남기 위한 편가름이다. 세계 금융위기가 정치·경제의 주도권을 다투는 신냉전을 촉발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신냉전 체제 한가운데 서 있다. 삭풍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형국이다.

    ‘흔들리는 제국’ 미국과 ‘외국자본의 등에 올라탄’ 중국. 두 나라는 사사건건 부딪친다. 위안화 환율, 지식재산권, 덤핑수출, 무역역조를 둘러싼 갈등은 해묵은 레퍼토리다. 최근에는 미 국채를 둘러싼 신경전이 뜨겁고, 위안화 환율 공방 2탄도 터졌다. 총만 쏘지 않는 경제 전쟁이다. 이면에는 세계 금융위기로 표면화된 통화전쟁이 자리 잡고 있다. ‘모든 국가와 위안화 결제를 추진하겠다’는 중국의 선언은 달러 체제에 대한 선전포고다.

    두 세력의 다툼이 이것으로만 끝났다면 한반도에 지금처럼 빨간불이 켜지지는 않았다. 군사대결로 확대되면서 문제는 복잡해지고 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말은 최후의 순간에는 무력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정치철학이다. 중국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더 하다. 중국의 북해·동해·남해 함대가 동·남 중국해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감행하고, 미국 핵잠수함이 아시아 바다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감히 대들지 말라’는 뜻을 담은 무력시위다.

    이런 와중에 강화되고 있는 것이 한반도를 격랑으로 몰아넣는 이이제이(以夷制夷)다. 대만을 중국 흔들기의 지렛대로 삼는 미국. 이에 맞서 중국은 북한을 대미 협박전의 방편으로 삼는다. 서로 손 안 대고 코 풀려는 전략이다. 미국이 먼저 중국에 일격을 가했다. 올해 초 2007년부터 미뤄오던 64억달러 규모의 무기를 대만에 팔기로 했다. ‘중국 관리’에 들어갔다는 신호다. 상하이를 사정권에 넣는 슝펑(雄風)-2E 순항미사일을 갖고 있는 대만은 최근 베이징에 닿는 사거리 2000㎞의 지대지 미사일까지 개발했다. 대만의 미사일 한 방에 중국은 ‘추락하는 이무기’로 전락할 판이다. 낭패다.

    중국은 마침내 “보복하겠다”고 나섰다. 그들이 꺼내든 카드는 북한이다. 장거리 미사일에 핵무기까지 개발했으니 미국에 맞설 더없이 좋은 대항마다. 이이제이를 이이제이로 막는 전략. 중국은 이 전략을 편가르기가 시작된 세계금융위기 이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럴진대 중국이 천안함을 공격한 북한을 비난해주기를 바랐으니 이만저만한 오판이 아니다. 그들은 천안함 조사보고서도 받으려 하지 않았다. 미 항공모함이 서해에서 군사훈련을 한다니 전쟁이라도 할 듯 길길이 날뛴다. 결국 유엔 안보리도 아무짝에 쓸모 없는 의장성명을 내놓게 됐다. 김정일은 교활하다. 북한이 중국의 전략을 거들고 있다는 의미를 천안함 공격에 담고자 했을 게 분명하다. 중국을 방문했을 때 그는 ‘천안함을 공격했다’고 말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이 굳이 천안함 조사보고서를 받으려 하지 않은 사실, 김정일이 화려한 송별식도 없이 북한으로 돌아간 것 모두 석연치가 않다.

    ‘6자 회담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 이는 중국이 밤낮으로 되뇌는 구호다. 하지만 무용한 일인 것 같다. 중국으로서는 이이제이로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하니. 그 구호는 통일 한국이 군사강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막기 위한 못박아두기 성격이 더 강하다.

    퇴계 이황은 69세의 나이로 마지막 자문을 구한 선조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태평한 세월이 극에 이르면 반드시 나라에 난리 징조가 나타난다. 남쪽과 북쪽에 오랑캐의 분쟁 조짐이 인다.” 그로부터 22년 후 임진왜란이 터졌다. 우리 사회에도 태평지세가 이어지고 있다. 전쟁과 가난을 잊어버릴 정도다. 그런 한반도에는 신냉전의 망령이 배회한다. 갈갈이 찢긴 국론, ‘당쟁’에 찌든 나라 지도자들. 배는 산으로 가고 있다.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