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민족분규<세계일보>
· 입력 2010.06.14 (월) 19:27, 수정 2010.06.14 (월)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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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民以食爲天) 유방의 모사인 역이기가 한 말이다. ‘사기’에 나온다. 먹을 게 풍족하면 무에 그리 싸울 일이 많을까. 궁핍이 문제다. 절대빈곤이든, 상대빈곤이든 많은 사람이 ‘살기 힘들다’고 생각할 때 사달이 난다. 항우, 유방이 등장한 것도 중국의 첫 통일제국 진의 경제가 피폐했던 때다. 초·한 싸움에서는 먹을 것을 하늘로 삼은 건달 유방이 이겼다.
경제난을 배경으로 하는 싸움. 그 싸움이 종족이나 민족 사이에 벌어지면 참담한 결과를 낳는다. 알바니아인을 인종청소하겠다며 세르비아인이 벌인 1998년 코소보 사태, 45만명이 희생된 수단 다르푸르 사태. 이들 참극 뒤에는 경제난이 도사리고 있다. 아시아 금융위기 와중인 1998년 당시 동구 경제도 어려웠다. 가난과 싸움을 하는 아프리카의 수단은 두말할 나위 없다.
지난해 터진 신장위구르 사태도 마찬가지다. 위구르인이 들고 일어난 까닭은 ‘한족에 의해 경제약탈이 자행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타림분지에 묻혀 있는 엄청난 천연자원.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가난뿐이니 중국의 지배질서에 등을 돌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신장도 잘살게 됐다’며 선전에 열을 올린다. 신장위구르자치구의 1인당 GDP를 5년 내 중국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정책도 내놓았다. 먹을 것으로 불만을 잠재우는 ‘역이기식’ 발상이다.
이번에는 키르기스스탄에서 문제가 터졌다. 제2의 도시 오시에서 키르기스인과 우즈베크인이 충돌해 100여명이 숨졌다. 2005년과 지난 4월에 벌어진 정권 퇴진을 두고 서방 국가에서 ‘튤립혁명’, ‘레몬혁명’이라며 찬탄을 늘어놓은 키르기스스탄의 갈등 이면에는 경제난과 주변 강국의 이해가 얽혀 있다. 이 나라에도 세계금융위기의 직격탄이 날아들었다. 외환 유동성이 바닥난 키르기스스탄은 다른 상하이협력기구(SCO) 국가처럼 위안화 우산 아래에 피신해야 했다. 이번 민족 분규도 계속되는 경제난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키르기스스탄에는 미군 기지도 있다. 4월 쫓겨난 바키예프 전 대통령의 친미 성향이 만들어낸 결과다. 미·중·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떻게 도울까’를 생각할 것이라고 답하면 순진하다. ‘어떻게 이용할까’를 생각하며 잔머리를 굴리고 있을 공산이 크다. 그래서 힘없고 가난한 약소 민족은 서럽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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