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한류<세계일보>
입력 2010.06.24 (목)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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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650년 전쯤의 일이다. 원나라 수도 대도에는 ‘고려양(高麗樣)’이 번졌다. 대도는 지금의 베이징이다. ‘양’은 풍(風), 류(流)로도 바꿔 쓸 수 있다. 고려양이란 원으로 건너간 고려문화를 이르는 말이다. 고려식으로 만든 떡(고려병)과 고기(고려육)가 대표적이다. 고려인인 기황후가 원의 실권을 잡을 즈음에는 대도에 고려 산물을 구하느라 줄을 대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한족의 풍속을 싫어했던 몽골인. 그들이 받아들인 고려양은 ‘대도 문화’의 한 축을 이루었다.
‘동방견문록’을 쓴 베네치아 상인 마르코 폴로는 영정하(永定河)를 건너 대도로 들어서며 이런 말을 남겼다. “칸의 도시로 들어가는 곳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가 있다.” 이 다리는 노구교(蘆溝橋)다. 지금도 남아 있다. 다리 건너 칸의 도시에 고려양이 유행했다는 것을 그는 알았을까.
역사는 되풀이된다. 한류(韓流). 현대판 고려양이다. ‘한불십년(韓不十年)’이라고 해야 할까. 권불십년이라더니 한류도 2000년대 중반 이후 시들하다. ‘한류 재점화’ 소리가 요란하지만 영 신통치가 않다. TV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상하이 TV 페스티벌에서 ‘아시안 TV 시리즈 특별상’을 탔다고 한다. 이미 80개국에 수출된 작품이니 한류 재점화 소리가 나온다. 어디 이 작품뿐이랴. ‘대장금’의 뒤를 잇겠다며 만들어진 작품이 한둘이 아니다.
한류 열풍은 왜 식었을까. 콘텐츠의 질이 떨어져서? 아닌 것 같다. 한국 문화산업의 질은 결코 퇴보하지 않았다. 이유는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 모든 것이 그렇듯 문화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 문화는 사회·경제·정치 상황에 의해 떠받쳐진다. 우리 경제를 보자면 2000년대는 저성장의 시기다. 중국과 동남아 주요 개도국에는 고성장이 이어졌다. 상하이, 광저우, 베이징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1만달러를 넘었거나 올해 넘어서게 된다. 우리나라와의 소득 격차는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번영의 길을 벗어난 나라. 그 나라는 더 이상 동경 대상이 아니다. 그러니 한류는 주춤해질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 이는 한류는 뭐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것은 단편적인 성공의 성격이 짙다. 병은 근본을 다스려야 한다. 대증요법에만 의존하면 한류는 험한 가시밭길을 걷게 된다.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