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호화청사<세계일보>
입력 2010.06.06 (일) 19:39, 수정 2010.06.06 (일) 19:38
황제는 천자(天子)로 불렸다. ‘하늘의 아들’이니 감히 맞서려 하지 말라는 지배 이데올로기가 담긴 호칭이다. 중국 대륙을 통일한 첫 천자는 진 시황제였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었으니 하고 싶은 게 많았던 모양이다. 그중 하나가 궁전 짓기였다. 그의 궁전은 300개가 넘었다고 한다. 역사상 가장 호화스러웠던 아방궁은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 장생불사(長生不死)를 바랐던 시황제는 이 궁이 다 지어지기 전에 숨지고 말았다. 항우가 불을 지른 아방궁의 흔적은 시안(西安) 아방촌에 남아 있다.
그렇게 많은 궁을 지었으니 백성은 얼마나 참담했겠는가. 과중한 세금에 전쟁과 노역에 동원된 백성의 당시 상황을 한 무제 때 정치가인 서락은 이렇게 말했다. “고통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가로수에 목을 맨 자가 줄을 이었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반란과 제국의 멸망이었다.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호화청사. 지방선거 결과 호화청사 짓기에 두팔걷고 나선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줄줄이 낙선했다. 감사원이 호화청사 특별감사 대상으로 삼은 지자체 가운데 여당이 단체장을 맡고 있던 곳은 19곳. 이 중 16곳에서 여당이 고배를 마셨다. 추풍낙엽이 따로 없다. 이제 야당, 무소속의 당선자들이 기세등등하게 방을 빼라고 한다. 대표적인 호화청사가 세워진 성남시. 이 청사를 지은 시장은 여당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5.7%의 표만 얻었을 뿐이다. 100층짜리 청사를 짓겠다던 안양시장도 쓴 잔을 마셨다. ‘아방궁 시장 후보’의 줄낙선 사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왜 이런 결과가 빚어졌을까. 호화청사 짓기에 목을 매니 더 많은 세금을 걷거나 빚을 내야 하는 것은 뻔한 이치다.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주민이 그 짐을 모두 감당해야 하니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찌는 여름에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 추운 겨울에는 훈훈한 히터 바람, 반짝이는 외벽과 바닥. ‘금동이에 담긴 좋은 술은 수많은 사람의 피’(金樽美酒千人血)라는 춘향전 어사시가 떠오른다. 아방궁의 말로다. ‘지도자(임금)는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호화청사를 접수한 야당 소속 단체장들이 어찌 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강호원 논설위원